사진/산행

2011년 2월 26일(토)~27일(일) 운문산과 운문사

남정권 2011. 2. 2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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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rchat Hai Caliptus - Ishtar

 

1980년,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영문도 모르고 이삿짐을 실은 트럭에 태워져 어느 산골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따라 고향을 떠나 경북 청도군 운문면이라는 조그만 마을의 지서 사택에서 살게 된 것이었다.

 

 

그해에 나는 아버지를 따라 근처의 운문사라는 절에 간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멀리 보이는 큰 산을 가리키며 이 길을 따라 저 산으로 들어가면 멋있는 폭포가 있다고 알려주셨다. 당시 나는 '그 곳이 어떤 곳일까!'하는 호기심이 컸던 것 같다. 이것이 운문산과의 첫 인연이었다.

 

세월은 흘러 다시 그 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내가 중학교 1학년이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나를 불러내어 잠바를 하나 사 주셨다. 평소에 잘 안 그러셨는데...

 

다음날 아버지는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희미한 의식으로 약 심부름을 가는 나에게 춥지 않냐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사 주신 잠바가 있어 따뜻해요'라고 대답했다.

 

이틀 후,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셨다. 아마 먼 곳으로 가게 될 것을 예감하시고 아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셨나보다!

 

이 후 가족은 서울로 상경하였고, 1991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제2의 고향이었던 운문이 댐 건설로 곧 수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마련한 여행 경비를 가지고 고향 친구와 함께 운문을 찾아갔다.

 

운문에 도착하기에 앞서 아버지가 알려주셨던 폭포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 영남 알프스를 산행하면서 운문산에 처음으로 올랐다.

 

 

 

운문을 찾아갔을 때 주민들은 이미 대부분 이주하여 마을은 온통 을씨년스러웠다. 친구를 버스정류장에 남겨두고 혼자서 폐가가 되어 버린 지서 사택을 찾아가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과거 그 공간에서 단란했던 가족의 기억들이 되살아나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이때 영남 알프스의 추억을 함께 만들었던 친구는 지금 내 여동생의 남편이 되었다.

 

 

이후에도 혼자, 혹은 지인과 함께 자주 영남 알프스를 찾았지만 운문산은 십 년 만인 2001년에 어느 한 여인과 함께 두 번째로 올랐다. 그 여인은 지금 내 아내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2011년 2월 26일, 다시 십 년 만에 세 번째로 운문산에 올랐다.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 아들과 네 살인 둘째 아들이 십 년 후에 처음 운문산을 오르면 읽을 수 있도록 편지를 써서 운문산의 품에 묻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두 아들을 데리고 운문사를 찾았다. 내 아버지가 초등학교 2학년인 나에게 그러했듯이...